
아마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었을거다.
문 손잡이를 당겨야 할지 밀어야 할지 헷갈려서 '마치 바보가 된 기분' 이 들었던 적 말이다.
혹은 4구로 된 가스레인지에 조절기가 일렬로 달려있을 때, 맨날 위치를 착각 한다거나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사소한 불편을 "내가 멍청해서" 혹은 "내가 정신을 못 차려서"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디자인의 문제일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에 대해서 얘기하는 책이다.
1. 디자인이 왜 어려울까?
디자인의 상당 부분이, 기술에는 전문가지만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엔지니어에 의해 이뤄진다.
엔지니어들이 모든 걸 논리적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지" 생각해서 만들어 놓으면, 정작 사람들은 그걸 "논리" 가 아니라 "직관" 이나 "습관" 으로 사용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디자이너는 "우리도 인간이니까, 당연히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지 않아?" 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인간 행동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예측 불가한 부분이 많다.
게다가 이해관계자들의 입장 차이도 있다.
- 생산자 : 싸게 만들자
- 엔지니어 : 신뢰성이 높은 걸 만들자
- 구매자 : 디자인이 예쁘지만, 싸면 좋겠고...
그러나 막상 집에서는 가장 중요한 건 사용하기 편한가? 직관적인가? 가 된다.
이게 잘 안 맞아떨어지니까, 결국 우리에게 불편한 디자인이 쏟아진다.
2. 사람을 위한 디자인의 핵심 개념
책에서는 디자인을 제대로 하려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행위 지원성 (Affordance)
- 물건이 그 자체로 '어떻게 사용되길' 기대하는 속성이다.
- 예를 들어 문 손잡이가 튀어나오면 당겨야 겠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것처럼 형태 자체가 사용 방법을 암시하는 것이다.
- 기표 (Signifier)
- '여길 누르세요' 같이 표시하는, 눈에 딱 보이는 신호
- 문에 "PUSH" 라고 적혀 있거나 책에 북마크 처럼 행동을 지시해주는 것이다.
- 실패한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호텔 욕실 싱크대 마개, 마개를 꼭 눌러야 마개가 열린다.... 누가 그걸 쉽게 눈치 챌까?
- 제약 (Constraint)
- '이 버튼은 회색이니까 누를 수 없어' 처럼, 행동의 범위를 제한해서 사용자가 헷갈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 제약이 잘 잡혀 있어야, '여기선 이 행동을 하면 안되는구나' 를 바로 알 수 있다.
- 대응 (Mapping)
- 가스레인지 화구의 스위치처럼, 어떤 것이 어떤 것을 제어하는지 맞춰주는 개념
- 만약 배치가 자연스럽게 되어 있다면, (예 위쪽 화구에는 위쪽 제어 장치를 켠다),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 피드백 (FeedBack)
- 내가 뭔가를 조작했을 때, 즉각적으로 '변화' 나 '결과' 를 보여주는 것
- 예를 들어 문자를 보내면 '메시지 전송 중...' 이라고 표시해주거나,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것이다.
- 피드백이 없으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게 돼서 더더욱 헤매게된다.
3. 이건 내 탓인가? 물건 탓인가?
우리는 일상에서 물건을 쓸 때 잘 안 되면, 보통 스스로를 탓한다.
"왜 나만 자꾸 헷갈리는 거지? 내가 너무 멍청한가?"
그런데 정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책에서는 대부분의 사용자 실수가 사실은 디자인 실수라고 말한다.
설계가 헷갈리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실수하기 딱 좋게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여기엔 인간의 심리적 특징이 작동하기도 한다.
- 잘못되면 남 탓, 잘될 땐 내 덕분이지
- 우리는 다른 사람이 뭘 잘못하면 '저 사람 성격 문제야' 라고 치부하고, 내 문제가 되면 '이건 환경 탓, 상황 탓이야'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불편하고 이상하면 '내가 문제인가?' 라고 자책하지 말고, '혹시 이 디자인이 이상한 건 아닐까?' 하고 한 번 의심을 해보자.
4. 지식이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또 '머릿속 지식' 과 '세상 속 지식'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 머릿속 지식 : 사용자가 다 외워야 하는 것.
- 복잡한 비밀번호, 무슨 버튼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등
- 세상 속 지식 : 물건이나 시스템이 알려주거나, 눈 앞에 표시해주는 것
- '이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립니다' 같은 아이콘
- '휴지통 모양' 의 아이콘을 보면 삭제 기능인 것을 아는 것 등
대부분을 세상 속의 지식에 담아놔라 라고 한다.
그러면 사용자가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쓸 수 있다.
패스워드가 복잡해질수록 보안이 좋아질 줄 알았더니, 사실은 사람들이 자꾸 까먹어서 어디에 적어두고, 오히려 보안이 약해진다는 아이러니도 비슷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5. 오류와 실수, 그리고 그걸 대비하는 디자인
책에서는 '사람이 정말 잘못할 떄가 있긴 하다' 라고 하는데, 가령 음주 운전처럼 명백히 사용자의 책임인 경우.
그 외에도 규칙을 어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던가, 또는 단순한 실수, 착오 때문에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사고를 '휴먼 에러' 라고 하면 곤란하다.
산업 현장의 재해를 보면, 대부분이 '사람의 부주의' 라고 결론짓지만, 사실은 안전 장치가 부족하거나, 사용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오류를 대비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 사용자가 언제든지 '취소' 나 '재시도' 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 만약 잘못된 조작이 일어나면 즉시 경고를 준다.
- 미리 순서나 단계를 간소화해서 실수 확률을 줄인다.
같은 디자인 들이 있다.
6. 기술은 빨리 변하지만, 사람과 문화는 천천히 변한다.
책에서는 '디자인이란 사실 굉장히 복잡한 작업' 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왜냐하면 기술은 계속 새로운 게 쏟이지고, 제품 기능은 점점 늘어나는데, 정작 사람들의 습관과 문화는 훨씬 느리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신이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점직적으로든 급진적으로든 변화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한다.
디자인도 그렇다보니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정의할 것인가' 하는 초반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서 나오는 이론이 이중 다이아몬드인데,
- 문제를 넓게 정의의하기 (문제 찾기)
- 좁혀서 '진짜 문제' 를 확정하기 (문제 구체화)
- 해결책을 잔뜩 시도해보기 (아이디어 생성 & 시제품화)
- 테스트하면서 계속 피드백 받기
이렇게 넓혔다가 줄였다가를 반복하는 이론이다.
이런 접근을 '인간 중심 디자인 (Human Centered Design) 이라고 부르는데,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려고 하는 노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아하 모먼트가 있었다. 또한 디자인이라는게 단순히 예쁜 것, 보기 좋은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깊이 이해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상에 있는 사소한 물건 하나를 놓고도 "왜 이렇게 만들어졌지?" 라고 생각해보면, 그 안에 기술, 비용, 문화 심리 등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제품을 볼 때 이런 '디자이너의 시각' 을 갖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디자인을 보면서 내 탓을 하는게 아닌 디자인이 문제구나 하고 살짝 웃으면서,
이건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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